지난 영성주간, 멀리 안동 일직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안동 시내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중의 시골교회를 일부러 찾은 이유는 아이들과 어른들, 세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는 <강아지 똥>, <몽실언니>의 동화작가 故권정생 선생이 교회 문간방의 종지기로 살며 일평생 새벽종을 울렸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똥아, 난 그만 죽는다. 부디 너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나 같이 더러운 게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니?"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 권정생 단편동화 『강아지 똥 1974년 초판문』 중 -
사는 동안 마당의 풀도 함부로 베지 않고 자연 그대로 피고 지는 온갖 꽃들과 함께 사셨다지요. 파랗게 맑은 하늘에 매일 새벽을 울렸을 낡고 오래된 종이 마치 권정생 선생의 그 착하고 맑은 마음으로 덫 칠 된 듯 아름다웠습니다.
선생은 서른도 못되어 얻은 결핵으로 콩팥 하나를 떼어내고 일평생 피눈물 나는 질병의 통증과 싸워야 했습니다. 가난과 병고. 그런데도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글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강아지 똥이 곧 선생이었고 선생의 삶을 다시 아름다운 민들레꽃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에 겸허히 머리를 숙였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한 켤레의 고무신을 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많은 신발과 옷, 그 끝없는 욕망에 부끄러워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는 도종환 시인의 글이 자연스레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선생은 인세로 모은 10억 원의 통장을 “내 작품의 인세는 모두 아이들이 읽어 얻은 것들이니 다시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며 북녘의 배고픈 어린이들을 위해 써 줄 것을 간곡한 유언으로 남겼다지요. 100권이 훌쩍 넘는 방대한 저작들이지만 그의 모든 작품은 그의 인생 ‘강아지 똥’의 풍성한 변주였습니다.
기도란 무엇이고, 밀알이 되겠다는 다짐은 또 무엇일까요. 이런 삶과 마음을 옷자락으로 삼는 진실함이야말로 우리가 드릴 가장 소중한 기도가 아니고 무엇일까 내내 생각하며 걷는 발걸음이었습니다.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어요.